티스토리 뷰

반응형

요란한 반전도, 거창한 사건도 없는데 오래 마음에 남는 영화들이 있다. 자극적인 소재 대신 인물의 얼굴과 하루하루를 가만히 따라가는 영화들. 이번 편에서는 큰 사건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붙잡는 한국 드라마 여섯 편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서 다룬 코미디, 오스카 수상작, SF, 장르영화와는 결이 다른, 조용한 힘을 가진 작품들이다.

이 시리즈가 주목하는 것 — 사건이 아니라 '지나가는 시간'

앞서 다룬 장르영화들이 사건과 갈등을 동력 삼아 이야기를 밀어붙인다면, 이번에 소개할 여섯 편은 다르게 움직인다. 위기는 있지만 폭발하지 않고, 상처는 드러나지만 한 번에 봉합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과정, 가족이나 타인과 서서히 관계를 다시 맺어가는 과정을 오래 지켜본다. 화려한 사건보다 '시간이 지나가는 방식'이 이야기를 이끈다는 점이 이 여섯 편의 공통분모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 이야기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프로듀서로 살아온 찬실은 갑작스레 일을 잃고 나서야 자신이 무엇으로 버텨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화려한 반전 없이, 산동네 셋방과 가사도우미 생활이라는 초라한 현실 속에서 찬실은 조금씩 자기 자신을 되찾아간다. 실패담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구나 한 번쯤 통과하는 삶의 공백기를 유쾌하고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그래도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되는 영화다.

말하지 못한 상처를 마주하는 가족 — 세자매·그것만이 내 세상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가장 오래 상처를 묻어두는 관계이기도 하다. 세자매는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는 세 자매가 아버지의 생신 자리에서 어린 시절의 가정폭력이라는 오래된 상처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사과 한마디를 요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곧 이 가족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반대 방향에서 가족을 그린다. 어릴 적 버려졌던 형이 뒤늦게 만난 동생, 그리고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어머니가 다시 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는다. 두 영화 모두 화해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손을 놓지 않는 것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른 존재를 향한 우정과 돌봄 — 나의 특별한 형제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지체장애를 가진 형과 지적장애를 가진 동생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살아가는 모습은, 돌봄이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큰 사건 없이도 두 사람의 우정이 쌓여가는 과정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다.

시간이 흘러도 남는 인연 — 써니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모이는 이야기는 낯설지 않은 소재지만, 써니는 그 시절의 우정이 각자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세심하게 따라가며 특별해진다. 화려했던 그때와 평범해진 지금을 오가는 구성 자체가, 인연이란 재회의 순간이 아니라 그 사이를 버텨온 시간 전체라는 걸 말해준다.

낯선 땅에서 뿌리내리는 가족 — 미나리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족이 낯선 땅에 정착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미나리는, 성공도 실패도 아닌 그 사이의 어딘가를 오래 응시한다. 극적인 갈등보다는 가족 구성원 각자가 감당하는 불안과 기대를 조용히 쌓아 올리며,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이민자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관점으로 보면 달라지는 것

여섯 편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버텨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사건이 인물을 몰아붙이는 대신, 인물이 자기 속도로 시간을 통과하며 관계를 다시 세운다. 자극적인 전개를 기대하고 본다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잔잔함이 오래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려한 장르물 사이에서 가끔은 이런 영화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한국 코미디의 공식 / 오스카 작품상으로 보는 영화사 / 현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SF / 한국 장르영화에 이어, 이번 5편으로 장르·주제별 가이드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다음에는 다섯 편을 한자리에 모은 전체 목차 글로 찾아올 예정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