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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미디 영화를 몇 편만 몰아봐도 이상한 기시감이 든다. 몸이 바뀌거나, 갑자기 가족이 늘어나거나, 진지한 아저씨 둘이 콤비를 이루거나. 분명 다른 영화인데 어딘가 낯이 익다.
그건 우연이 아니다. 한국 코미디에는 관객이 좋아하는 걸 아는 몇 가지 반복되는 공식이 있고, 그 공식을 얼마나 잘 비트냐에 따라 흥행이 갈린다. 이 글에서는 그 공식들을 여섯 가지로 나눠서, 각 공식을 대표하는 영화들과 함께 정리했다.
공식 하나 — 몸이 통째로 바뀐다
가장 확실한 웃음 포인트는 "저 사람이 갑자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군다"는 낙차다. 몸이나 신분이 뒤바뀌면 배우는 평소와 정반대의 연기를 해야 하고, 그 부조화 자체가 개그가 된다.
〈수상한 그녀〉는 칠순 할머니 오말순이 우연히 사진관에서 스무 살의 몸으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나문희가 연기하던 인물을 심은경이 이어받는 구조라, 두 배우의 말투와 습관이 얼마나 비슷하게 이어지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아빠는 딸〉은 회사에서 만년 과장인 아빠와 첫사랑 앞둔 여고생 딸의 몸이 7일간 뒤바뀐다. 여고생이 된 아저씨, 아저씨가 된 여고생을 각각 연기해야 하는 두 배우의 원맨쇼가 이 영화의 전부다.
〈럭키〉는 몸이 아니라 신분이 뒤바뀐다. 완벽한 킬러가 사고로 기억을 잃고, 하필 그 자리에 있던 무명배우의 삶을 자기 삶인 줄 알고 살게 된다. 액션 전문가가 착한 배우 흉내를 내야 하는 어긋남이 웃음의 핵심이다.
공식 둘 — 가족이 뚝 떨어진다
한국 코미디가 즐겨 쓰는 또 다른 장치는, 평온하던 사람 앞에 갑자기 책임져야 할 가족이 나타나는 설정이다.
〈과속스캔들〉에서는 잘나가는 라디오 DJ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다 큰 딸과 손자가 나타난다. 자유롭던 삶이 하루아침에 3대 가족으로 바뀌는 낙차가 이야기를 이끈다.
〈담보〉는 사채업자들이 빚 대신 아홉 살 여자아이를 떠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람 위협하는 게 직업인 어른들이 아이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이 이 영화의 웃음이자 뭉클함이다.
공식 셋 — 진지한 아저씨들이 콤비를 이룬다
전혀 안 맞을 것 같은 두 아저씨를 붙여놓고 티격태격하게 만드는 것도 흥행 공식이다.
〈공조〉와 그 속편 〈공조2: 인터내셔날〉은 북한 형사와 남한 형사가 어쩔 수 없이 함께 수사하게 되는 설정이다. 체제도 말투도 다른 두 사람이 서서히 손발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웃음이 나온다.
〈보안관〉은 은퇴한 형사가 시골 마을의 보안관 노릇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도시의 수사 방식이 시골 마을의 정서와 부딪히는 데서 코미디가 생긴다.
공식 넷 — 평범한 사람들이 떼로 뭉쳐 맞선다
주인공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뭉쳐서 부당한 일이나 재난에 맞서는 구조도 자주 반복된다.
〈걸캅스〉는 한직으로 밀려난 두 여형사가 디지털 성범죄 조직을 쫓으며 다시 활약하는 이야기다. 무시당하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반격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엑시트〉는 갑작스러운 유독가스 사태로 뒤덮인 도심에서, 한때 클라이밍 동아리였던 두 사람이 실력을 발휘해 탈출하는 재난 코미디다. 웃음과 긴장감을 같이 쌓아 올리는 방식이 특징이다.
공식 다섯 — 포기했던 꿈이 다시 무대에 선다
〈댄싱퀸〉은 서울시장 후보가 된 남편과, 왕년에 가수를 꿈꿨던 아내의 이야기다. 남편의 정치적 이미지와 아내의 오래된 꿈이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결국 두 사람 다 자기 무대를 찾아가는 구조다.
공식 여섯 — 사기꾼과 얼떨결에 얽힌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가석방 중인 사기꾼과, 우연히 그녀에게 반지를 소매치기당한 평범한 약사가 얽히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정직한 사람과 사기꾼이 함께 다니게 되는 어긋난 조합이 웃음을 만든다.
이 공식들을 알고 보면 달라지는 것
여섯 가지 공식을 놓고 보면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전부 낙차로 웃긴다는 것이다. 나이·신분·직업·처지가 갑자기 뒤바뀌거나 어울리지 않는 두 존재가 붙어야 하는 상황이, 한국 코미디가 가장 즐겨 쓰는 재료다.
그러니 다음에 한국 코미디를 볼 때는 이 질문을 먼저 던져보시길 권한다. 이 영화는 누구와 누구를, 혹은 무엇과 무엇을 부딪히게 만들어서 웃기려는 걸까. 그 답을 찾고 나면, 결말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도 대충 짐작이 간다.
다음 편 예고
다음 2편에서는 오스카 작품상으로 보는 영화사를 다룬다. 대부·쉰들러 리스트부터 기생충까지, 아카데미가 매년 최고의 영화로 고른 작품들을 훑으며 90년 넘는 영화사의 흐름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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