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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할리우드 언덕의 굽은 도로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자동차 사고가 난다. 살아남은 여자는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언덕 아래 아파트로 숨어든다. 다음 날,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LA에 도착한 베티가 바로 그 집의 문을 연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미스터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에 들어서면 이야기는 스스로를 뒤집는다. 같은 배우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앞에서 본 장면들이 전혀 다른 뜻을 갖기 시작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보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영화다.
기본정보
| 항목 | 내용 |
| 감독 | 데이비드 린치 (각본 겸) |
| 출연 | 나오미 왓츠, 로라 해링, 저스틴 서룩스 |
| 장르 | 미스터리, 드라마 |
| 개봉일 | 2001년 11월 30일 (국내) / 2017년 10월 5일, 2025년 2월 5일 재개봉 |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 러닝타임 | 147분 |
| 관객수 | 23,153명 (씨네21 집계 기준) |
줄거리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일어난 사고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여자는 기억을 잃은 채 근처의 한 아파트에 몸을 숨긴다. 스타의 꿈을 안고 LA에 온 배우 지망생 베티(나오미 왓츠)는 이모의 아파트에 머물기로 하고, 그곳에서 몰래 숨어 있던 이 여자를 발견한다.
자신을 리타(로라 해링)라고 부르는 여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남은 단서는 '다이앤'이라는 이름 하나뿐이다. 베티는 자신의 앞날을 열어 줄 수도 있는 감독 아담 케셔(저스틴 서룩스)와의 만남까지 미뤄 두고, 리타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그 이름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두 사람의 추적이 이어질수록 영화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베티와 똑같은 얼굴을 한 다이앤이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오미 왓츠와 로라 해링은 이 영화에서 각각 두 인물을 연기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직접 확인하는 편이 좋다.
이 영화를 다시 볼 만한 이유
• 두 번째 관람에서 완성되는 구조.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 볼 때는 전반부가 미스터리이고 후반부가 혼란이지만, 다시 보면 순서가 바뀐다. 후반부를 알고 나서 전반부를 보면 사소해 보였던 대사와 인물 배치가 모두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반복 관람이 보상받는 영화다.
• 나오미 왓츠의 두 얼굴. 같은 배우가 밝고 의욕에 찬 베티와, 지치고 무너진 다이앤을 연기한다. 오디션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배우가 어떤 폭을 가졌는지 드러난다. 나오미 왓츠는 이 작품을 계기로 스타 배우로 발돋움했다.
• 화면과 소리가 만드는 불안. 촬영은 피터 데밍, 음악은 린치와 오래 함께한 안젤로 바달라멘티가 맡았다. 데밍은 린치가 장면마다 구체적인 지시 대신 '행복하게 시작해서 점점 슬퍼진다' 같은 감정을 주문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햇빛이 쏟아지는 할리우드 풍경에서도 어딘가 불안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이런 방식 덕분이다.
• TV 드라마에서 영화로 바뀐 이력. 이 작품은 원래 ABC 방송의 TV 시리즈로 기획되었다. 1999년에 상당 부분을 촬영했지만 방송사가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되었고, 린치는 이후 결말 부분을 추가로 만들어 영화로 완성했다. 열린 결말을 전제로 찍은 장면들이 영화 안에 남아 있다는 점을 알고 보면 또 다르게 읽힌다.
• 시간이 지나며 더 높아진 평가. 2001년 칸 영화제 감독상, 2002년 세자르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이후 영국 BBC가 36개국 평론가 17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1위에 올랐다.
아쉬운 점
•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명확한 답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보고 나서 허탈하거나 답답할 수 있다. 국내 첫 개봉 당시 관객이 많지 않았던 데에도 이런 난해함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 길고 느리다. 러닝타임이 147분이고, 전반부에는 본 줄거리와 직접 이어지지 않는 듯한 곁가지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긴장감이 쌓이기까지 인내가 필요하다.
• 수위가 높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노출과 성적인 묘사, 폭력적인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함께 볼 사람을 고를 때 참고하는 것이 좋다.
정리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할리우드라는 꿈의 공장이 한 사람을 어떻게 삼키는지를, 꿈의 문법으로 보여 주는 영화다. 처음 보면 퍼즐 같고, 두 번 보면 비극으로 읽힌다. 모든 장면을 해석하려고 애쓰기보다 화면과 소리가 주는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 영화가 왜 20년 넘게 이야기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조용한 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보기를 권한다.